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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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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est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5-04-2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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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녹화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 7.


힐스테이트 용인마크밸리


강원도 화전정리사(史) ③ 이미 거주하고 있는화전민들을 설득해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통신도, 장비도 마땅치 않던 시절, 정부와 주민들은 산림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화전 복구에.


홍수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시골에 가도 시간만 나면 나무를 심으셨어요”라고 회고했다.


▲ 춘천 가마골 일대에서화전민의 아들로 살아온 안관섭씨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화전정리사업의 이면에는 그곳을 떠난화전민들이 있었다.


강원도의 1차 화전정리사업(1965년~1968년)의 시작이다.


당시 강원도의 계획은 8436㏊를 신규 개간해화전민들의 대토로 제공하고 화전농가 6702호를 이주, 7154㏊에 경제성 있는 용제림이나 뽕나무를 심어 푸른 산림을 복구하려 했다.


△1961년 제정 공포된 산림법 △제1, 2차 치산녹화계획 △전국산림실태조사 △산림계 민초조림(民草造林) △화전민대책 △대관령 특수조림 △영일지구 사방사업(砂防事業·황폐지 복구 예방사업) 완료 보고서 △경북 봉화군 산림조합 연료림.


강원도의 1차 화전정리사업(1965년~1968년)의 시작이다.


당시 강원도의 계획은 8436㏊를 신규 개간해화전민들의 대토로 제공하고 화전농가 6702호를 이주, 7154㏊에 경제성 있는 용제림이나 뽕나무를 심어 푸른 산림을 복구하려 했다.


중 강원도에만 3만 1079가구가 있었다.


화전은 야산을 불태운 뒤 그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경법이다.


산골이 많은 강원도에는화전민들이 많이 살았다.


식량이 모자라 배를 굶던 시절 내 땅 한평 없던 주민들은 화전밭이라도 개간하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스킨십을 하라’는 미션을 수행한다.


이후 향한 곳은 태백의 전통 가옥인 너와집.


이곳은 과거 태백의 산악지대에서 살아가던화전민들이 지은 한옥으로, 기와를 구하기 어려웠던 강원도에서는 나무 널판인 너와를 사용해 지붕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산불 진화에 몰두하다 연기와 화염에 갇혀 실신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가 바로 천동수 주무관이다.


#52구간화전민들의 흔적 따라 낙동강 비경을 찾아서 소광2리(십이령 쉼터)~편전교~한나무재~큰넓재~쌍전리~금강소나무숲길 안내센터(전곡리)~전곡리.


이러한 봄 새의 소리는 관동이 아니고는 흔히 듣지 못할 것이다.


두견의 소리도 관동의 봄 소리 중에 한 특색이겠지만,화전민들의 밭 가는 소리도 관동의 봄이 아니고는 잘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관동은 남도나 서도와 달라서 평야가 적고 산지가 많은 까닭.


아쉬울 수 있으니 여행 동선을 잘 계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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